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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난노 시즌 2 (유리 등장, 난노의 인간화, 전개)

by 쿠루룽 2026. 3. 9.

그녀의 이름은 난노 시즌 2는 전작보다 평균 제작비가 약 40% 증가하며 영상미와 서사 복잡도가 대폭 강화되었습니다(출처: 넷플릭스 공식 발표). 시즌 2를 보기 시작하면서, 솔직히 첫 에피소드부터 "이건 완전히 다른 작품이구나"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즌2는 전작의 성공 공식을 답습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오히려 그 공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절대적 집행자였던 난노가 인간적 고뇌를 겪고, 유리라는 대립 존재가 등장하면서 옴니버스 구조마저 무너졌습니다.

유리 등장 - 난노와의 대립 구도

시즌1에서 난노는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내 권력 구조와 위선을 응징하는 절대자였습니다. 하지만 시즌2에서는 유리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며 서사의 중심축이 완전히 재편됩니다. 여기서 '대립 구도(Antagonistic Structure)'란 주인공과 반대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이 등장해 갈등을 유발하는 서사 기법을 의미합니다. 유리는 난노의 피를 받아 그녀와 유사한 능력을 얻었지만, 접근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일반적으로 속편에서는 주인공의 캐릭터성을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그 법칙을 과감히 깼습니다. 난노는 더 이상 냉소적 관찰자가 아니라 고뇌하는 존재로 변화합니다. 특히 제인 에피소드에서 난노가 제인의 정체성을 빼앗은 뒤 죄책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시즌1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전개였습니다. 유리는 난노가 벌을 주지 않는 대상까지 처벌하며, '정의'라는 명분 아래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저는 특히 케이 에피소드에서 이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봅니다. 난노는 케이에게 자신이 저지른 악습을 그대로 돌려주며 반성의 기회를 줍니다. 반면 유리는 케이를 완전히 파멸시키려 합니다. 이런 차이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응보적 정의란 가해자에게 동등한 고통을 되돌려주는 방식이고,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출처: 법무부 회복적 사법 정책).

난노의 인간화 - 캐릭터 변화

시즌2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난노의 인간화입니다. 시즌1에서 그녀는 3일 3시간 33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단아이를 농락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즌2에서는 유리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심지어 망설이기까지 합니다. 제 생각엔 이건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기보다는 시즌 연장을 위한 설정 변경에 가깝습니다. 저도 처음엔 "난노가 고민한다고?" 하며 당황했습니다. 시즌1에서 난노는 '카르마의 대리인(Agent of Karma)'처럼 작동했습니다. 카르마란 인과응보의 법칙, 즉 행동에 따른 필연적 결과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시즌2에서는 이 카르마 시스템에 감정이라는 변수가 개입하며 일관성이 흔들립니다.

 

일반적으로 복수 서사에서는 복수자가 흔들림 없이 목표를 관철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써보니 난노의 이런 변화가 오히려 서사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준코 에피소드에서 난노는 완 선생을 막아서며 유리와 정면충돌합니다. 과거의 난노였다면 준코의 복수를 방관했을 겁니다. 하지만 시즌2의 난노는 "이건 정의가 아니야"라며 개입합니다. 이 장면에서 난노의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는 복선이 깔리는데, 이는 그녀가 더 이상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암시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 변화가 아쉬웠습니다. 시즌1의 난노는 시원하고 통쾌했습니다. 하지만 시즌2에서는 유리와의 대립 때문에 난노가 수세에 몰리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난노가 칼에 찔린 뒤 다시 살아나는지 불분명하게 끝나는 결말은 "시즌3을 위한 떡밥"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전개 - 옴니버스 붕괴와 연결 서사의 한계

시즌1은 에피소드별로 독립된 사건을 다루는 옴니버스 형식이었습니다. 여기서 '옴니버스(Omnibus)'란 각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완결되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하지만 시즌2는 유리의 등장으로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긴 서사로 연결되며 옴니버스 특유의 깔끔함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옴니버스 형식을 선호합니다. 한 에피소드가 끝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다음 에피소드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즌2는 에피소드가 끝나도 유리와 난노의 갈등이 계속 이어집니다. 민니 에피소드에서 민니가 투신 후 다시 살아나 난노처럼 변하는 장면은 다음 에피소드로 연결되는 복선입니다. 제인 에피소드 역시 난노가 제인의 정체성을 빼앗은 뒤 유리가 개입하며 다음 사건의 도화선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결이 긴장감보다는 피로감을 줬습니다. 각 에피소드의 주제 자체는 강렬했습니다. 나나이의 임신과 출산, 나르몬 선생의 과거 트라우마, 케이의 악습 순환 같은 소재들은 사회 고발적 메시지가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이 강렬한 사건들이 유리와 난노의 대립이라는 큰 줄기에 묶이면서 오히려 개별 사건의 임팩트가 희석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즌2의 에피소드별 소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나나이: 과거 여학생들에게 중절 수술을 강요했던 남학생이 스스로 임신을 경험하며 권선징악의 대가를 치름
  • 나르몬: 남학생 혐오와 과도한 통제가 과거 친구의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드러내며, 복수심의 악순환을 보여줌
  • 민니: 음주운전 사고 후 아버지의 권력으로 무마하려다 결국 트위터 판결대로 살해당하는 계급 정의 이슈
  • 유리: 흙수저 출신 학생이 난노를 배신하며 또 다른 난노로 변모하는 기원 이야기
  • 케이: 신입생 괴롭힘이라는 악습을 되돌려 받으며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순환 구조
  • 규칙의 학교: 교칙으로 학생을 억압하던 선생과 학교가 학생들의 집단 저항으로 무너지는 권력 전복
  • 제인: SNS에서 가짜 페르소나를 유지하던 스트리머가 정체성을 빼앗기는 미디어 시대의 자아 상실
  • 준꼬: 과거 괴롭힘 피해자가 살인자가 되었고, 엄마가 이를 숨기기 위해 딸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비극

저는 이 소재들 하나하나는 훌륭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유리의 복수 플롯에 종속되면서 각 사건의 독립성이 약화됐습니다. 시즌1처럼 "이번 에피소드는 이 문제를 다뤘구나" 하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맛이 없었습니다. 시즌2의 마지막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난노가 준꼬에게 칼에 찔린 뒤 죽었는지 살았는지 불분명하게 끝나고, 유리는 자신의 피를 준꼬에게 주며 또 다른 난노를 만듭니다. 이건 명백히 시즌3를 염두에 둔 열린 결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불만입니다. 시즌1은 각 에피소드가 명확한 결말을 가졌고, 시즌 전체도 "난노는 계속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여운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시즌2는 "난노의 정체가 뭐지?", "난노는 죽은 건가 산 건가?" 같은 의문만 남기고 끝납니다.

 

일반적으로 속편은 전작의 미스터리를 해소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기존 질문은 그대로 두고 새 질문만 추가했습니다. 그래서 시즌3가 나오지 않으면 시즌2의 서사가 완성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시청자를 붙잡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시즌2 자체의 완결성을 해친다고 봅니다.


참고: https://youtu.be/8tArQK7mZDI?si=dMDIaerXYgRwfA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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